다큐멘터리 2026년 9월 1일 VOL.09

다큐멘터리

사라지는 도시의
목격자들

재개발 앞에 서다 — 부산 원도심 10년의 기록

부산 영도 봉래동 재개발 현장 골목 풍경
▲ 부산 영도 봉래동 일대. 재개발 공고문이 붙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사진 이선호

재개발 공고문이 골목 입구에 붙은 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그 동네로 향했다.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공기 속에는 이미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그 골목이 그날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오래된 담벼락, 좁은 계단, 서로 기대어 있는 지붕들. 그것들이 곧 사라진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됐다.

나는 그해 가을부터 매달 그 골목을 찾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록이었다. 철거 전후를 남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골목을 걷다 보면 거기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건물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이사 트럭이 다녀간 자리에는 잠긴 문들이 남았다. 이름을 지운 문패, 화분을 내놓았던 계단. 누군가의 20년이 하루 만에 지워졌다. 나는 그 문들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가 자꾸 손을 붙잡는 것 같았다.

짐을 쌌을 때 가져가지 못한 것들이 남겨졌다. 아무도 챙겨가지 않은 빨래집게, 담벼락의 낙서, 지붕 위의 고양이 밥그릇. 버려진 것들이 아니었다.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그것들을 찍으면서 나는 비로소 이 공간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 봉래동 마지막 주민 김복순 씨. 2025년 11월. 사진 이선호
▲ 이사짐이 나간 골목, 잠긴 문들만 남다. 사진 이선호

"찍어도 좋소. 어디서든 이 동네가
있었다는 걸 알아주면 되지."

— 봉래동 마지막 주민 김복순 씨

이름을 묻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 말을 했다. 그해 겨울, 할머니도 골목을 떠났다. 그것이 그 골목에서 살았던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그 골목은 빠르게 비어갔다. 빈집들은 하나둘 문을 잠갔고, 이윽고 철거 기계가 들어왔다.

철거가 시작되던 날, 나는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 포클레인이 처음 벽을 무너뜨리는 순간, 나는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오십 년 된 벽이 흙먼지와 함께 쓰러지는 것을 그냥 눈으로만 보았다. 카메라를 든 손이 내려갔다. 기록이 필요한 것과, 기록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종종 그렇게 멈추곤 했다.

철거가 끝난 자리에 섰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여기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사진은 그 무게를 기억한다. 사라진 것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고, 혹은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것이 내가 카메라를 들고 그 골목으로 갔던 이유였다.

도시는 계속 변한다. 그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시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나는 그 골목에서 배웠다. 기억은 공간에 깃든다. 공간이 사라지면 기억도 흐려진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지금도 그 자리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