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Star — Scrollytelling

사라지는 도시의
목격자

재개발 앞에 선 부산 원도심, 그 마지막 풍경들

이선호

Photographer · Documentary

10년간 부산 원도심의 변화를 기록해온 사진가. 재개발 앞에 사라지는 공간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재개발 공고문이 붙은 날부터, 나는 그 골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라지기 전에 담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01

도시의 그늘

재개발 공고문이 골목 입구에 붙은 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그 동네를 찍었다.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공기 속에는 이미 무언가가 달랐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그 골목이 그날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오래된 담벼락, 좁은 계단, 서로 기대어 있는 지붕들. 그것들이 곧 사라진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됐다.

02

빈 문들

이사 트럭이 다녀간 자리에는 잠긴 문들이 남았다. 이름을 지운 문패, 화분을 내놓았던 계단. 누군가의 20년이 하루 만에 지워졌다. 나는 그 문들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

03

남겨진 것들

짐을 쌌을 때 가져가지 못한 것들이 남겨졌다. 아무도 챙겨가지 않은 빨래집게, 담벼락의 낙서, 지붕 위의 고양이 밥그릇. 버려진 것들이 아니었다.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그것들을 찍으면서 나는 비로소 이 공간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04

마지막 이웃

이름을 묻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찍어도 좋소. 어디서든 이 동네가 있었다는 걸 알아주면 되지"라고 했다. 그해 겨울, 할머니도 골목을 떠났다. 그것이 그 골목에서 살았던 마지막 사람이었다.

05

기억의 무게

철거가 끝난 자리에 섰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여기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사진은 그 무게를 기억한다. 사라진 것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고, 혹은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것이 내가 카메라를 들고 그 골목으로 갔던 이유였다.

End of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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