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2026년 1월, 이정아는 부산의 바다를 다시 찾았다. 해운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쉬 찾지 않는 작은 포구, 그곳에서 그는 낡은 메모장을 펼쳤다. 바다는 거기 있었다. 언제나처럼.
이 글은 그날의 기록이다. 시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고, 그냥 그날 포구에 앉아 바라본 것들의 목록이기도 하다. 이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읽다 보면 무언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다.
I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다
우리가 돌아보기 전부터
우리가 떠난 다음에도
파도는 빈자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다음 파도가 오면
이전 파도는 없던 것이 된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새롭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같다
II
골목의 끝을 걷다 보면
낯선 지붕 위로 빛이 모인다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
라디오 소리, 아이 웃음소리
그게 전부였는데
그게 다였는데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은
사실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여전히 김이 오르고 있다
그는 메모장을 닫고 포구를 바라보았다. 낚시배 한 척이 천천히 수평선 쪽으로 멀어졌다. 누군가의 오늘이 바다 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겨울 햇살이 물 위에서 부서졌다.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었다. 그래서 오래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것은 대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겼다.
III
시간은 쌓이지 않는다
흘러가도, 또 흘러가도
물이 가진 기억처럼
모양이 없다
하지만 손으로 물을 떠보면
잠깐은 담긴다
그 잠깐이
삶이라는 것을
IV
그래도 괜찮다
어떤 하루는 그냥 지나가도 된다
모든 날이 빛날 필요는 없다
빛이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바다는 내일도 거기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보든 돌아보지 않든
우리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