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1 · 졸업특집 인터뷰 · 인물 01

김서연의
이야기

여백 · 언어 · 연구실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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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연

국어국문학과 4학년 · 인문대학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 고전 소설 번역에 관심을 키워왔으며 문학 번역가를 꿈꾼다. 새벽 도서관의 불빛 아래서 오늘도 단어를 고른다.

Chapter 01

여백

4년의 무게와 빈 시간들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확신보다 도피에 가까웠어요. 수학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웃음) 글 읽는 건 좋으니까 국문과 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글을 읽는 것과 공부하는 건 완전히 달랐어요. 처음으로 훈민정음 원문을 해독하는 수업을 들었을 때, 뭔가가 켜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아, 이게 내 자리구나 싶었어요.

4년을 '여백'이라고 표현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들이 그 여백을 만들었나요?

처음엔 계속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학점도, 스펙도, 경험도. 3학년 즈음에 번아웃이 왔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시기가. 그냥 도서관 창가에 앉아서 멍하게 바깥을 보는 날들이 생겼는데, 그 시간들이 오히려 저를 다시 돌아보게 했어요. 나는 왜 여기 있지, 나는 뭘 좋아하지. 그 멍한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 같아요.

Chapter 02

새벽

연구실 창가에서 발견한 것

연구실에서 밤새 번역했던 날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나요?

3학년 겨울이었어요. 교수님이 중세 국어로 쓰인 소설을 현대어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는데, 자원하는 학생만 참여하는 거였어요. 선배 한 명이랑 둘이서 참여했어요. 사전도 꺼내고, 다른 번역본도 참고하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옮길지 토론했어요. 새벽 네 시쯤 됐을 때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지쳐있었는데 이상하게 설레더라고요. 지금 내가 600년 전 사람의 목소리를 현재로 옮기고 있다는 게, 뭔가 굉장하게 느껴졌어요.

그 경험이 지금의 방향과 연결이 되나요?

직접적으로요. 그 날 이후로 번역이라는 일이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목소리를 잇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지금은 현대 해외 문학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도 관심이 생겼어요. 어떤 언어로 쓰인 이야기를, 다른 언어를 쓰는 누군가가 읽을 수 있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목소리를 잇는 일이에요."
Chapter 03

언어

졸업 이후의 삶을 그리다

졸업 후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대학원을 갈지, 바로 번역 일을 시작할지 아직 고민 중이에요. 일단 번역 공모전에 응모해보려고 해요. 번역가라는 직업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요. 근데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일단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포기하더라도, 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낫잖아요.

지금의 4학년 자신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빈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뭔가를 안 하고 있다는 게 나태한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하나만 더 하면,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해보라고.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나만을 위한 번역.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공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