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CH.01
매거진 부산 FM 인터뷰

심야 주파수

부산의 밤, 라디오의 목소리들

정나영 기자 202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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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의 목소리

부산의 새벽 두 시, 광안리 해변. 파도 소리보다 더 멀리서 오는 것들이 있다. 대시보드 위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 진행자가 묻는다. "지금 어디 계세요?" 전화를 건 청취자의 목소리가 잠깐 흔들린다.

"해운대 백사장이요. 혼자요."

라디오는 그런 것이다. 혼자인 사람과 혼자인 사람이 주파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는 방식. 텔레비전처럼 보이지 않아도 되고, 문자처럼 생각을 정돈하지 않아도 된다. 목소리만으로 충분하다. 떨림도, 망설임도, 침묵도 그대로 전해진다.

부산에는 심야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항만에서 야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 새벽 배를 기다리는 선원, 아이를 재우고 부엌에 앉아 식어가는 국물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들은 각자의 어둠 속에서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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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사이에서

지지직, 하는 소리. 주파수를 잃은 라디오가 내는 소리는 어쩌면 가장 솔직한 방송인지 모른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상태. 신호가 끊기고, 세계가 잠시 흩어지는 순간.

"노이즈는 방해가 아니에요. 그 사이에 진짜 소리가 있어요." — 부산 FM 93.5 야간 진행자 김인수

10년째 부산 심야 라디오를 진행하는 김인수는 말한다. 그는 매주 화요일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방송한다. 청취율이 가장 낮은 시간대, 그래서 가장 솔직한 목소리들이 전화를 거는 시간이라고.

"낮에 전화하는 사람들은 잘 들린다는 걸 알고 전화해요. 새벽에 전화하는 사람들은 그냥 말하고 싶어서 전화해요. 차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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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를 맞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라디오 앞에 앉은 부산 사람들이 매일 밤 하는 일이다. 부두 창고 한켠에서, 감천 문화마을 골목 끝에서, 영도 절영로 위 작은 식당에서. 저마다의 새벽이 같은 채널에 모인다.

남포동에서 30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정숙은 매일 밤 문을 닫고 나서 라디오를 켠다. 설거지를 하면서, 내일 장볼 목록을 적으면서, 어쩌다 남은 떡볶이를 혼자 먹으면서.

"라디오에서 내 얘기를 해줘요. 가게 힘들다고, 혼자라고. 내가 전화한 것도 아닌데 내 이야기인 거예요. 그래서 계속 들어요."

라디오의 목소리는 특정인에게 향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한다고 느낀다. 그것이 라디오의 오래된 마법이다. 주파수는 하나지만, 귀는 제각각 자신의 방향으로 그 소리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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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멘트

"오늘 밤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인수의 목소리가 주파수 너머로 사라진다. 새벽 네 시, 부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라디오를 끈다. 그리고 그 침묵이 하루의 시작이 된다.

도시는 계속 깨어나고 있다. 항구에서는 새벽 배가 닻을 올리고, 자갈치 시장에서는 첫 경매가 시작된다. 라디오가 꺼진 자리에 부산의 소리가 들어온다. 파도, 엔진, 사람들의 발소리.

"라디오는 끝나도 목소리는 남아요.
그게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예요." — 김인수

심야 주파수는 오늘 밤도 흐른다. 혼자인 사람들을 위해,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사실을 위해. 부산의 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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