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ar — Photo Essay
부산 남항, 빛이 오기 전의 이야기
새벽 네 시, 사진가 정예진은 항구에 선다. 불이 꺼진 수산 시장, 계류된 어선들, 물 위를 떠다니는 안개. 낮이 되면 사라질 것들이 아직 거기 있다.
그는 10년 넘게 이 시간을 기록해왔다. 다른 이들이 잠든 사이, 항구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고 믿으면서.
안개가 걷히기 전, 어선들은 서로의 윤곽만 알아본다. 불빛 하나가 켜지면 그 빛이 물 위에서 수십 배로 번진다. 항구의 새벽은 그 번짐으로 시작된다.
수평선 너머에서 빛이 온다. 처음엔 주황빛 실 한 가닥이더니, 금세 선착장 전체를 물들인다. 정예진은 이 순간을 위해 기다린다고 했다. 셔터를 누를 때가 아니라, 빛이 스스로 자리를 잡는 그 찰나를.
"어둠이 걷히기 직전,
— 사진가 정예진
항구는 가장 솔직한 표정을 짓는다."
낮이 오면 이 풍경은 사라진다. 트럭이 들어오고, 상인들이 오고,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사진가가 기록하는 건 그 이전의 시간이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고요한 유예의 순간.
정예진은 이 항구에 다시 올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달라진 것은 없을 테지만, 빛은 매번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닿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이 사진들은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 사이 부산 남항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정예진의 다음 개인전은 2026년 9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사진 · 글 — 정예진
End of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