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공예가 이재경
투명한 유리 속에 담긴 뜨거운 불꽃과 수많은 이야기.
이재경 작가가 안내하는 유리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자.
Dreming garden 1, 25x15x50cm, 2018
도자로 시작해 여러 재료를 다루다 ‘유리’에 안착한 이재경 작가. 처음에는 유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이 끌렸고 이내 유리만이 가진 특성에 매료되었다. “유리는 자체적으로도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빛이나 주변 환경이 더해지면 다르게 보이는 유일무이한 재료인 것 같아요. 조형물이라고 하면 주물이나 돌로 만든 것들이 떠오르실 텐데 유리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그가 유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는 유리를 다루는 작가가 많지 않았다. 유리 작가 1세대에 속하는 그의 선배들이 유학으로 배워 온 지식을 전하며 유리 공예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그와 그의 동료들은 작가들이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을 구축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작업 공간이 전무했습니다. 작업에 필요한 설비를 직접 구상해야 했던 건 물론이고 기자재도 업체에서 구할 수 없으니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고요. 1.5세대는 작업 환경을 만들어서 작품 활동을 활성화한 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유리 작품을 갤러리에서 전시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리라는 재료를 이해하는 사람도, 유리 작품이 가진 가치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기 때문인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유리 오브제를 찾는 사람이 많아 작품 수가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고 전시하는 곳도 늘었다.
Drop melt manuscript paper 2,
(Glass MA, Gaffer,Cane), 24x24x78cm, 2014
이재경 작가는 30년 가까이 유리를 다루면서 작업 과정이 아름답지 못하면 결과물 역시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작업 과정이 아름답다는 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제 경험상 다른 재료는 몇 년간 집중하면 어느 정도 마스터할 수 있었던 반면 유리는 달랐습니다. 유일하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재료였고 지금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평생을 해도 마스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보다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걷는 것 같달까요. 아무리 거장이라고 해도 100개를 만들면 100개를 다 완성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만큼 유리는 다루기 매우 까다로운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동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온도와 손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많이 쌓는 수밖에 없다. 이재경 작가는 작업을 앞두고 머릿속으로 작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 과정이 얼마나 세세한가 하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시간이 실제 작업 시간과 같을 정도다. 그는 유리를 다루는 어려움을 ‘뜻대로 할 수 없는 자식을 기르는 일’에 비유한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다루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며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더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게 아니기에 과정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멈추는 시점을 잘 판단해야 한다고. 한편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그가 계속하는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불’을 다루며 또 다른 즐거움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불에 닿아 뜨거워진 유리가 식으면서 일정 영역의 온도에 진입하면 단단해지지만, 일정 영역 이하로 온도가 내려가면 폭탄처럼 터져버립니다. 정말 ‘찰나’예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내면 금이 가고 깨지기 일쑤예요.” 이런 예측 불가능함이 이재경 작가에게 어떤 극한의 자극보다도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한때 드리프트, 바이크 등을 즐겼던 그는 이제 작업을 하는 순간에 그 이상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다.
Melting Sounds 2, (Glass MA, Gaffer, Cane),
50x35x15cm, 2014
유리 작업 방식은 크게 유리 표면을 다듬어 형태를 만드는 콜드워킹(Cold Working)과 유리를 가열하여 형태를 만드는 핫워킹(Hot Working)으로 나뉜다. 블로잉(Blowing)은 핫워킹의 하나로 파이프를 통해 말랑말랑하게 녹은 유리에 숨을 불어넣으며 형태를 만드는 기법이다. 이재경 작가는 이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작품에는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이재경 작가의 작품은 주로 그의 다이어리 같은 역할을 한다.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히터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 등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색으로 표현한다. 일기는 글로 쓰지만 그는 색을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작품을 보면 예전에 비해 색이 많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