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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야흐로
경주 동궁원 & 기장매화원

절기상 입춘은 이미 지났으니 어쨌든 봄이라 불러야 할 시기인데도 벚나무는 아직 앙상하다.
실망하여 그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만개한 벚꽃을 상상하며 포근함을 만끽하는 나를 발견한다.
봄은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계절이라더니, 보이지 않아도 봄은 이미 왔구나 싶다.
이 무렵 구경하기 좋은 곳으로 추천받은 것은 경주. 그중에서도 동궁원이었다.

향수를 자아내는 자동차, 풍경을 담아 걷는
산책로

동궁원 주차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엔 세계자동차박물관과 물너울공원이 있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주변을 둘러볼 겸 자동차박물관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초록 택시가 나를 맞이한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기종이라는데, 한국 최초의 승용차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내가 오래된 차를 구경한들 뭘 느낄 수 있을까?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런 걱정을 했었는데, 기우였다. 이내 호기심과 설렘으로 구경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다 벽에 붙은 안내문 앞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자동차가 아니라 예술입니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나와 같이 들뜬 마음에 허겁지겁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했던 포니 자동차 주변에는 유독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혹 '자동차 마니아들만이 알고 있는 이유가 있는 건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지금의 50대에게는 모두 포니에 얽힌 추억이 있기 때문이란다. 결국 박물관의 목적은 향수의 재현이었음을. 3층 규모 전시관을 전부 둘러보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 할 줄 안다

벚꽃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식물원을 구경할 생각으로 온 것인데, 의외로 버드파크를 찾는 사람이 많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입장료를 치르고 들어가니 이름과 달리 파충류와 설치류, 어류들도 함께 지내는 공간이었다.
사육사가 날 불러 세워 앵무새 한 마리와 친해져 보라고 권했다. '강남이'라는 녀석은 유독 사람을 좋아해서 여행객의 손가락을 의자 삼아 깃을 정리하고 졸기도 한단다. 내 손에 올라온 털뭉치가 스스로 치장하는 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그 체온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한 줌 크기 생명의 불꽃이 이토록 뜨겁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코뿔새 '봉식이'는 특히 친한 사육사가 오면 신나는 소리를 낸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가가니 슬금슬금 옆걸음질. 눈치 보면서도 날아서 도망가지는 않았다. 작별하려 나도 모르게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 반대편에서 "안녕" "사랑해" 하는 음성이 들려와 깜짝 놀랐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 할 줄 안다.' 어릴 적 당연하게 배운 것들을 어른들은 가끔 잊어버리곤 한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 할 줄 안다.'

외투에 맺힌 녹색

사진 제공_ 동궁원

벚꽃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식물원을 구경할 생각으로 온 것인데, 의외로 버드파크를 찾는 사람이 많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입장료를 치르고 들어가니 이름과 달리 파충류와 설치류, 어류들도 함께 지내는 공간이었다.
사육사가 날 불러 세워 앵무새 한 마리와 친해져 보라고 권했다. '강남이'라는 녀석은 유독 사람을 좋아해서 여행객의 손가락을 의자 삼아 깃을 정리하고 졸기도 한단다. 내 손에 올라온 털뭉치가 스스로 치장하는 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그 체온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한 줌 크기 생명의 불꽃이 이토록 뜨겁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코뿔새 '봉식이'는 특히 친한 사육사가 오면 신나는 소리를 낸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가가니 슬금슬금 옆걸음질. 눈치 보면서도 날아서 도망가지는 않았다. 작별하려 나도 모르게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 반대편에서 "안녕" "사랑해" 하는 음성이 들려와 깜짝 놀랐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 할 줄 안다.' 어릴 적 당연하게 배운 것들을 어른들은 가끔 잊어버리곤 한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 할 줄 안다.'

허리 숙여
들여다보는 봄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 기장읍의 2차선 도로가에 자리한 매화원에 들렀다. 사유지임에도 일반에 개방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 이야기라도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추억을 생각해. 추억은 그대로 있는 거야. 행복한 기억이야.'
먼저 피어난 홍매화를 감상하며 도착한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추억을 생각하자, 추억은 그대로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추억은 행복한 기억임을 기억하자.
고백하자면 자연 그대로의 매화나무를 본 것은 처음이라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당황했다. 아래를 쳐내지 않고, 줄기를 위로 뻗어 올리지도 않아서 나뭇가지는 가슴 높이부터 뻗어있는데, 낮게 드리운 탓에 나무 사이를 거닐려고 하면 고개는 물론 허리까지 숙여야 했다. 하지만 눈높이에 핀 꽃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만족감에 불편함은 금세 잊는다. 곁을 지나는 강아지가 나무 아래에서 제자리뛰기를 하는 걸 보면 매화향은 동물들에게도 향기로운가 보다. 매년 이곳에 들러 매화꽃 피는 걸 촬영한다는 어르신은 삼각대에 종류별 렌즈까지 갖추었다. 둘러보고 하늘을 봐도 온통 매화. 매화 천지니 매년 찾아도 부족할 수밖에. 너른 동산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니 매화원 전체에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때마침 구름이 물러나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들이객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