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시원한 바다와 계곡을 먼저 떠올리지만 나에게는 또 하나의 피서지가 있다. 바로 전시장이다.
나는 전시를 좋아한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림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작품을 전문적으로 해석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시를 즐기는 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전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조용한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바라보고, 잠시 멈춰 생각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좋다. 그런 여유가 참 좋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되고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춘 채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시장은 언제나 혼자 조용히 머물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다.
그렇게 전시를 즐기던 나를 한층 더 그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전시들이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마리스칼 전〉, 〈쿠사마 야요이 전〉, 〈마크 로스코 전〉, 그리고 〈페르난도 보테로 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크 로스코 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에는 전시가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번졌다. 유명인들의 관람 후기와 SNS 인증 사진이 이어졌고 전시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전시장은 연일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 경험을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전시를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즐기는 '경험 소비(Experience Consumption)'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미술관과 전시장은 이제 누구나 자연스럽게 찾는 일상의 문화가 되었다.
SNS에 전시 인증 사진을 남기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자신의 취향과 추억을 기록하는 일도 이제는 익숙한 문화가 되었다. 나는 이런 변화가 꽤 반갑다. 미술이 일부 사람들의 취미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즐기는 문화가 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전시는 한 번 빠지면 계속 찾게 되는 문화인지도 모르겠다.
관심 있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가까운 곳이면 물론이고,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만큼 전시를 보는 시간은 내게 즐거운 문화생활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휴식이다.
지난 여름에도 〈요시고 사진전 2〉, 〈워너 브롱크호스트전〉, 〈톰 삭스 전〉, 〈캐서린 번하드 전〉 등을 관람하며 무더위를 피해 전시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최근에는 〈데이미언 허스트 전〉, 〈맥스 시덴토프 개인전〉, 〈김춘자 개인전〉 등을 관람하며 또 다른 영감과 즐거움을 만났다.
전시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경험이다.
전시장을 나오면 작품보다 그날의 시간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떤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전시를 보고 들렀던 카페와 거리의 풍경, 그리고 MD샵에서 엽서 한 장이나 작은 기념품을 고르는 시간까지.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전시를 보는 하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전시가 작품만 감상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경험이다. 작품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만 발견해도 충분하고, 조용히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전시는 제 역할을 다한다.
무더운 여름이다. 잠시 더위를 피해 시원한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올여름에는 2015년 이후 다시 한국을 찾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전시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부산에서도 좋은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부산문화회관에서는 현재 주목할 만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프랑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과 함께 조용한 전시장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이번 여름은 바다도 좋고 계곡도 좋지만, 하루쯤은 전시장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곳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그림 한 점이 아니라 오랜만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던 그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