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ar

빛과 색의 언어

화가 박소연이 말하는 색채와 감정의 경계

Scroll

색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박소연 작가가 처음 붓을 잡은 건 열두 살 때였다. 부모님이 사준 수채화 세트 앞에서 그가 제일 먼저 꺼낸 색은 파란색이 아닌 회색이었다. "그날 창밖이 흐렸거든요. 하늘이 딱 그 색이었어요." 그 한 문장에 그의 작업 방식이 모두 담겨 있다. 그는 감정을 먼저 색으로 고르고, 나중에 형태를 붙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작업실 벽에는 팔레트 대신 '오늘의 색' 메모지가 붙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날의 감정에 가장 가까운 색을 적는다. 전시 리뷰어들이 그의 작품을 두고 "보는 사람의 기분이 읽힌다"고 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계를 그리지 않는 작가

박소연의 작품에는 윤곽선이 없다. 형태가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 때문에 관람객들은 종종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경계가 없으면 가둘 수 없잖아요. 색이 공간으로 번져나가길 바랐어요."

이 기법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물감이 번지면 실패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습한 날씨에 작업하다 우연히 번진 파란색이 오히려 완성된 작품처럼 보였고, 그날 이후 습기를 통제하는 대신 활용하기로 했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경계를 믿기로 했죠."

감정을 기록하는 또 다른 방식

최근 박소연은 '감정 지도'라는 시리즈를 시작했다. 특정 장소에서 느낀 감정을 색의 밀도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붉은색이 짙을수록 강렬했던 기억, 회색이 흐릴수록 무감각했던 순간이다. 지도처럼 생겼지만 어느 도시의 지형도 아니다.

"사람들이 제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다가 가요. 나중에 들으면 자기 감정이 떠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작가는 그 말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자신의 기억을 그렸지만, 보는 사람의 기억이 겹쳐지는 것. 그것이 그가 색을 고집하는 이유다.